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구스투스 영묘 (문단 편집) == 훼손 == 해당 영묘는 로마 황제들에게 국립묘지로 인식된 장소라기보다는 아우구스투스와 그 일가의 개인묘지 개념이었고, 하드리아누스 이래로 황제들의 무덤은 하드리아누스 영묘였지만 국가 차원에서 이를 관리했다. 전승된 이야기들에 따르면 해당 영묘 역시 [[410년]] [[서고트]]의 왕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하고 약탈했을 때, 이 영묘 역시 [[도굴]] 되면서 항아리들은 내부 장식품들과 함께 약탈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해당 영묘도 항아리 관석들만 남아 있다고 알려졌고, 황제와 황족들의 유골함이 훼손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정설처럼 알려졌다. 이는 하드리아누스 영묘와 트라야누스 원주도 이 때 도굴당했고, 로마 전체가 약탈됐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았던 주장이었다.[* 하드리아누스 영묘의 경우, 유골이 든 항아리는 테베레강에 던져버리고 청동상 등 값이 나가는 장식품들은 서고트족이 약탈해 가거나 테베레강에 버렸다고 한다. 다만 하드리아누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항아리의 관석 하나는 남아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영묘는 중세를 거치면서 요새로 전용되어 크게 훼손되었고, 교회와 영주 등이 영묘를 장식한 대리석 조각을 건축 자재로 이용해 뼈대만 남은 상태인데다, 농민과 전문 도굴꾼, 유지, 교회 등이 영묘 안치자들의 유골을 담은 납골 항아리 등을 노리고 조직적 차원에서 도굴을 시도해 이런 주장은 완전 복원 공사 전까지는 정설로 확정됐다. 더군다나 [[19세기]]에는 투우장, 공연장으로 쓰인 까닭에, [[1930년대]]에 들어와서야 당시 [[이탈리아 왕국]]의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를 싸그리 정리하고 복원했다고 해도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완전히 복원되지 못했다. 설상가상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해도, 아우구스투스 영묘는 로마 시내 불량배들의 장소로 이용되어 우범장소가 되고 무단으로 쓰레기가 투기되는 등 훼손이 심각했다. 따라서 영묘 훼손은 다른 로마 시대 유적과 비교해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졌고, 관리가 허술해 [[2007년]]부터 [[2021년]]까지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243738?sid=104|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가졌으며, [[2021년]] [[3월 1일]](현지 시간)에 영묘만 우선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방치된 영묘는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매장자 중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의 비문이 발견된다거나, 유골항아리가 깨지고 마구 흩뿌려진 것으로 추정된 것으로 여겨진 황족들의 매장실에서 영면한 황족들의 유골항아리 등이 하드리아누스 영묘와 달리 온전한 상태도 꽤 존재함이 확인됐다. 이는 로마인들이 석회를 바르고 쉽게 훼손하지 못하게 보호한 노력 덕분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탈리아 방송 매체들은 중세 시대 도굴꾼들이 이를 깨기 위해 시도한 곡괭이 자국이 아우구스투스의 누나 옥타비아의 납골항아리와 매장공간에서 확인됐고, 다른 황족들의 매장공간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허나 도굴꾼들의 노력에도 석회가 워낙 단단하고 두꺼워 이 시도가 실패했다고 한다. 2021년부터 아우구스투스의 누나로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외할머니인 [[소 옥타비아]]의 유골항아리와 아그리파의 비문 등이 로마 시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대중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2022년]] 6월부터는 다시 보수 공사에 들어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